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한글을 이렇게 오래 바라보고, 또 한글을 그리며 살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타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익숙했던 것들과 조금씩 멀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계절도, 골목의 풍경도, 익숙하게 들리던 말들도 어느 순간 기억 속의 풍경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글은 멀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브라질에서 살아갈수록 한글이 더 가까워졌다.
한글을 쓰고 있으면 고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한 글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한글을 단순히 ‘쓰는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 ‘그려보기’ 시작했다.
자음과 모음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곧게 뻗은 선과 둥근 선, 비어 있는 공간과 서로 만나는 형태를 바라보다 보니 한글 안에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게 한글은 문자가 아니라 하나의 시각 언어가 되었다.
ㅎ에서는 숨과 하늘을 생각하고, ㅇ에서는 비어 있지만 무엇인가를 품고 있는 공간을 생각한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하나의 글자를 이루듯 사람과 사람도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내가 한글을 그리는 이유는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글을 통해 한국을 기억하고,
한글을 통해 사람과 문화를 잇고,
한글을 통해 내가 살아온 시간을 남기는 것.
브라질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작가로서 나는 우리 문화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기를 바란다.
한글이 박물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그림이 되고, 디자인이 되고, 새로운 세대의 언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한글을 쓰고, 그리고, 해체하고, 다시 만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살아온 브라질의 자연과 사람들, 한국의 전통과 기억도 함께 담아내고 싶다.
그렇게 한 글자씩 쌓아온 나의 생각을 2027년에는 한 권의 캘린더에 담았다.
매달 한 작품을 바라보며 날짜만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글과 함께 한 해의 시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달력의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도 작품은 남는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남고,
기억은 다시 예술이 된다.
나는 오늘도 한글을 그린다.
한글이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2027년, 그 시간을 탁상에 열두 장의 작품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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