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거벗은 브라질 경제사》의 저자이자 재외동포청 Okbiz 자문위원인 이재명 스타트업 전문가가 이번 사태의 본질을 날카롭게 해부합니다. 급변하는 정책 변동성부터 중남미 진출을 노리는 한국 기업이 생존을 위해 확보해야 할 5가지 비즈니스 시사점을 전합니다.
브라질에서 최근 가장 뜨거웠던 정치 사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블라우스 한 장’이었다. 50달러짜리 원피스에 매겨졌던 20% 수입세, 이른바 ‘블루지냐 세금(taxa das blusinhas)’이 도입 2년도 채우지 못한 채 룰라 대통령의 손에 의해 폐지된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이름과 달리, 이 한 장의 블라우스에는 브라질의 산업구조, 조세 체계, 소비자 정치학, 그리고 임박한 대선이 그대로 압축되어 있다.
갑자기 등장한 세금, 그리고 ‘Custo Brasil’
브라질에는 본래 50달러 이하 개인 간 송금에 한해 면세 제도가 있어 왔다. 해외 가족이 보내는 선물이나 소액 물품을 염두에 둔 장치였다. 그러나 2020년을 전후로 Shein, Shopee, AliExpress 등 중국 크로스보더 플랫폼이 브라질 시장에 본격 진입하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특히 Shein은 패키지를 모두 개인 송장으로 쪼개 면세 구간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브라질을 미국 다음의 글로벌 2위 시장으로 키워냈다. 2023년 국세청 조사에서 면세 통관 물품의 99% 이상이 사실상 B2C 거래로 드러나자, 정부는 2024년 8월 20% 연방 수입세를 신설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세금이 브라질 산업계에는 ‘생존선’과도 같았다는 점이다. 누적과세로 최종가의 30~40%가 세금으로 빠져나가는 세제, 명목 임금의 70~100%에 이르는 고용주 부담, 빈약한 인프라, 그리고 두 자릿수에 가까운 기준금리. 이른바 ‘Custo Brasil(브라질 코스트)’의 구조 속에서 브라질산 의류가 중국 완제품 수입가를 이길 방법은 사실상 없었다.
‘가난세’가 된 산업 보호 정책
그러나 산업의 보호막은 서민에게 전혀 다른 의미였다. 같은 50달러짜리 옷이 누군가에게는 ‘공정한 경쟁’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명백한 ‘가난세’였다. 부유층은 마이애미로 떠나 면세 캐리어를 채워 돌아왔고, 정작 세금을 매일 체감한 사람들은 Shein에서 한 달치 옷을 사던 저소득층이었다. ‘노동자의 정부’를 표방해 온 룰라 정권이 도입한 세금이 공교롭게도 가사도우미의 옷값을 올리는 효과를 낳고 만 셈이다. SNS에서 폭발한 분노의 본질은 결국 ‘가격 정의’였다. 결국 2026년 5월 12일, 룰라 대통령은 임시조치에 서명하여 50달러 이하 국제 구매에 대한 연방 수입세를 0으로 되돌렸다. 산업계의 지지보다 치열한 대선을 앞둔 소비자의 표가 훨씬 무거웠다는 정치적 계산이었다.
한국 기업이 가져가야 할 다섯 가지 시사점
여기서 한국의 기업과 정책 결정자들이 가져가야 할 시사점은 분명하다. 첫째, 브라질은 ‘신흥국 프리미엄 시장’이 아니라 ‘가격 정의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장’이다. 둘째, 한국 브랜드의 진정한 경쟁자는 플랫폼화된 중국식 소비 그 자체다. 셋째, 정책 변동성은 상수다. 법보다 정치가 우선하고, 정치는 선거 사이클에 따라 급변한다. 한-Mercosur FTA 협상에서도 같은 패턴이 작동할 것이다. 넷째,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을 살 수 있게 만드는 금융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12개월 할부, PIX, Boleto, 캐시백과 결합되지 않는 한국 제품은 좀처럼 팔리지 않는다. 다섯째, K뷰티는 예외다. K뷰티는 처음부터 ‘저가 + 고기능 + 정서적 가치’의 조합으로 브라질 소비자가 ‘정당한 가격에 좋은 것’으로 인식하는 카테고리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 성공 공식을 가전, 자동차, 식품, 패션 분야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면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카테고리마다 브라질 소비자의 ‘가격 정치학’은 전혀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진출을 검토하는 어느 한국 기업의 임원이 필자에게 “브라질 시장이 도대체 어떤 곳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답은 하나다. 브라질은 50달러짜리 블라우스 한 장이 대통령을 굴복시키는 나라이며, 한국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 또한 단 하나다. 우리 제품은 이곳 사람들에게 ‘정당한 가격’으로 느껴지는가, 아니면 또 하나의 ‘blusinha’로 전락하고 마는가.
저자: 이재명, ‘벌거벗은 브라질 경제사’ 저자, 재외동포청 Okbiz 자문위원, 스타트업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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