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작가는 브라질에서 서양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한인 미술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다. 장르는 달랐어도 같은 시대, 같은 땅에서 붓을 들고 살아온 동료들에게 그는 늘 가까이 존재하는 위안이었다. 어떤 해에는 앞서거니, 어떤 해에는 뒤서거니 전시회를 열고 각자의 색깔로 작품을 이야기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민자 특유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냈을 동지였다.
그렇기에 이번 귀향 소식은 단순한 거주지 이전이 아닌, 브라질 한인 이민사(史)의 한 장면이 조용히 막을 내리는 듯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재외동포로 이어온 작가 생활은 결코 화려한 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홀로 지키는 작업실,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캔버스 앞에서의 고뇌, 전시를 앞둔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내 작품 앞에 오래 머물러 줄 때 찾아오는 찰나의 위로. 그 고단한 시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동료와 동포들에게 그의 떠남은 더 큰 여운으로 남는다.
이제 전 작가는 고향의 공기 속에서 다시 붓을 들게 된다. 어린 시절의 바람 냄새를 다시 만나고, 한국의 산과 골목, 사계절의 빛깔 속에서 또 다른 예술적 개화를 맞이할 것이다. 도리어 브라질이라는 낯선 타국에서 보낸 32년의 세월은 고향 땅에서 피어날 그의 작품에 더 깊고 단단한 뿌리가 되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곳에 남겨진 이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솔직히 섭섭함과 쓸쓸함이 교차한다. 전시를 준비하며 소식을 나누고, 이 먼 이국땅에서 “그래도 함께 붓을 드는 사람이 있다”는 묘한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빈자리를 보며 문득 “이제 혼자구나” 하는 쓸쓸함이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은 떠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예술가가 치열하게 지나온 자리에는 반드시 씨앗이 남는 법이다.
전옥희 작가가 32년 동안 이 땅에서 끝내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앞으로 이곳 브라질에서 예술을 시작하려는 후배 작가들에게 조용하고도 단단한 증거가 될 것이다. “타국에서도 예술로 당당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장을 열 전 작가의 앞날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브라질의 화실 한편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그의 예술적 향기를 우리 동포 사회는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부디 고향에서도 건승하며 오래오래 작업을 이어가길 바라며, 언젠가 상파울루의 하늘과 바람이 그리워질 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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