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선거에서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기존 정치권과 다른 색깔을 가진 30∼40대 정치인들이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이에 따라 2026년 총선이 ‘포스트 룰라’와 ‘포스트 볼소나루’ 시대의 정치 지형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브라질 현지 주요 언론과 연방의회, 연방선거법원(TSE) 자료를 종합하면 오는 10월 4일 1차 투표에서는 대통령과 주지사뿐 아니라 상원의원과 연방하원의원, 주의원도 함께 선출한다.
특히 정치권의 관심은 상원에 집중되고 있다.
전체 81석 가운데 3분의 2인 54석이 새로 선출된다. 전국 26개 주와 연방특구에서 각각 2명씩 뽑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상원의 정치 지형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상원은 연방대법원(STF) 대법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인준과 대통령 탄핵 심판, 헌법 개정 등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어느 정치세력이 우위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차기 정부의 국정 운영과 주요 개혁 입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상파울루 상원 2석 놓고 진보·중도·보수 격돌
브라질 최대 선거구인 상파울루에서는 상원 2석을 놓고 마리나 시우바(Rede), 시모니 테베치(PSB), 길례르미 데히치(PP), 안드레 두 프라두(PL), 히카르두 살리스(Novo) 등이 경쟁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특정 후보의 독주보다 여러 후보가 오차범위 안에서 선두권을 형성하는 혼전이 이어지고 있다.
후보들의 선거 전략도 뚜렷하게 갈린다.
환경부 장관을 지낸 마리나는 기후변화와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을 앞세우고 있다. 국제적 인지도와 룰라 정부에서 환경정책을 이끈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환경 정치인’이라는 전국적 이미지를 상파울루 지역 현안과 얼마나 연결하느냐가 과제다.
테베치는 여성 안전과 사회정책을 주요 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상원의원과 장관을 지낸 경험에 중도층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반면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도 확고한 핵심 지지층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부담으로 꼽힌다.
보수진영에서는 따르시시우 지 프레이타스 상파울루 주지사와 가까운 데히치와 프라두가 주목받고 있다.
데히치는 상파울루주 치안국장 경력을 앞세워 범죄와 조직범죄에 대한 강경 대응을 강조한다. 프라두는 상파울루 주의회 의장 경험과 따르시시우 주지사와의 협력 관계를 부각하고 있다.
두 후보가 따르시시우와의 연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마리나는 환경정책과 정치 경력, 테베치는 여성 대상 범죄와 사회정책을 차별화된 의제로 내세우는 구도다.
이에 따라 상파울루 상원 선거는 의원 2명을 선출하는 경쟁을 넘어 따르시시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보수세력이 얼마나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시험대로 평가된다.
특히 프라두는 전국적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상파울루 지방정치 조직과 주의회 기반을 갖추고 있어 이번 선거의 변수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 연방하원에서는 30대 정치인 부상
연방하원 선거에서는 에리카 힐턴(PSOL-SP), 타바타 아마라우(PSB-SP), 니콜라스 페헤이라(PL-MG), 킴 카타기리(Missão-SP) 등 젊은 정치인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치적 성향은 크게 다르지만 기존 정당 조직에만 의존하지 않고 SNS와 특정 정책 의제를 통해 전국적인 지지층을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진보진영에서는 에리카 힐턴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에리카는 주 6일 근무·1일 휴무 형태인 이른바 ‘6×1 근무제’ 폐지를 전국적인 정치 의제로 끌어올린 핵심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도 이미 의회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현행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고 주 2일 휴무를 보장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은 지난 2일 상원 헌법사법위원회(CCJ)를 통과해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인권과 여성·소수자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뤄온 에리카가 최근 노동시간과 생활 문제로 영역을 넓히면서 진보진영의 차세대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한 대중 전달력과 SNS 영향력이 경쟁력이지만 보수층의 반감이 크고 정치적 양극화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타바타 아마라우는 다른 유형의 진보 정치인이다.
교육과 청년, 여성 문제를 중심으로 정책 전문성과 행정 효율성을 강조하며 중도층으로 지지 기반을 넓혀왔다.
에리카가 사회운동과 대중동원에 강점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타바타는 정책과 데이터, 교육을 앞세운 중도진보 정치인에 가깝다.
룰라 대통령 이후 브라질 진보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재편될지를 가늠한다는 점에서도 두 정치인의 성장세는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 보수진영 차세대 주자 니콜라스 페헤이라
보수진영에서는 니콜라스 페헤이라가 가장 눈에 띄는 젊은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1996년생인 니콜라스는 소셜미디어와 짧은 영상을 적극 활용해 젊은 보수층과 복음주의 유권자를 끌어모은 대표적인 ‘디지털 정치인’이다.
가족과 종교, 보수적 사회 가치, 노동자당(PT) 정부 비판이 주요 정치 메시지다.
강력한 SNS 영향력과 확고한 보수 지지층이 최대 자산이다. 자이르 볼소나루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장기적으로 약화할 경우 볼소나루 가족 밖에서 보수 유권자를 흡수할 차세대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된다.
다만 정치적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반대층의 거부감도 높은 만큼 중도 유권자까지 지지 기반을 넓힐 수 있을지는 과제로 남는다.
킴 카타기리는 또 다른 형태의 우파 정치인이다.
킴은 볼소나루식 사회보수주의보다는 작은 정부와 재정개혁, 시장경제, 공공부문 개혁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우파에 가깝다.
신생 정당 미썽(Missão)이 이번 선거에서 의미 있는 득표와 의석을 확보한다면 브라질 우파는 향후 볼소나루 중심의 대중보수, 따르시시우 계열의 행정·치안 보수, 시장경제를 앞세운 자유주의 우파로 더욱 세분화될 가능성이 있다.
◇ 상파울루 주의회도 신진 정치인 경쟁
상파울루 주의원 선거에서도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의 젊은 정치인들이 영향력 확대에 나섰다.
진보진영에서는 타이나라 파리아(PT)와 파울라 다 방카다 페미니스타(PSOL) 등이 주목된다.
타이나라는 여성과 교육, 사회정책을 주요 의제로 다루는 젊은 PT 정치인이다. 파울라는 여성과 인종, 교육,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PSOL의 신진 정치인이다.
보수진영에서는 루카스 보비(PL)가 볼소나루와 따르시시우 지지층을 기반으로 재선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의 성적은 상파울루에서도 기존 진보·보수 정치의 세대교체 가능성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전망이다.
◇ 한인 여성 김유나, 상파울루 주의원 도전
이번 상파울루 주의원 선거에는 한인 여성 후보도 출마했다.
언론인과 작가로 활동해 온 한인 1.5세 김유나(Yoo Na Kim·44) 후보가 포데모스(Podemos) 소속으로 출마했다. 투표번호는 20820이다.
김 후보는 1982년 4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8년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브라질로 이민해 상파울루에서 성장했으며 이후 브라질 국적을 취득했다.
언론과 문화교류, 기업 활동 등을 이어온 김 후보는 교육과 여성의 경제적 자립, 치안과 범죄 예방, 문화산업 등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통한 청년 취업·창업 확대를, 여성 정책에서는 직업교육과 창업 지원을 통한 경제적 자립을 강조한다.
치안 분야에서는 여성 보호와 사회복지, 치안 정보를 연계하고 기술을 활용해 범죄를 예방하는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화 분야에서는 공연이나 행사 지원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관광, 창업, 일자리를 연결하는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소규모 문화생산자와 예술인의 시장 참여 확대, 기업·대학과의 협력, 국제문화교류 확대도 주요 정책으로 제시한다.
김 후보는 한국에서 태어나 브라질에서 성장한 이민자 배경과 언론·문화·기업 분야에서 쌓은 경험을 차별화 요소로 내세울 수 있다.
다만 상파울루주 전체가 하나의 선거구인 주의원 선거에서 한인사회를 넘어 여성과 청년, 중소기업인, 문화산업 종사자 등 일반 유권자로 지지 기반을 얼마나 넓히느냐가 과제로 꼽힌다.
◇ ‘룰라 이후·볼소나루 이후’ 준비하는 브라질 정치
이번 총선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브라질 정치의 세대교체다.
진보진영의 최대 과제는 ‘룰라 이후’다.
룰라 대통령과 같은 전국적 대중성과 노동계층 기반을 갖춘 후계자는 아직 뚜렷하지 않다. 에리카 힐턴과 타바타 아마라우처럼 서로 다른 정치 스타일을 가진 젊은 정치인들이 얼마나 외연을 넓히느냐에 따라 향후 진보진영의 권력 구도도 달라질 수 있다.
보수진영은 여러 갈래로 분화할 가능성이 있다.
볼소나루 가족을 중심으로 한 대중보수와 따르시시우를 중심으로 한 행정·치안형 보수, 킴 카타기리와 미썽당이 추구하는 시장 자유주의 노선 등이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니콜라스 페헤이라와 같은 SNS 기반 정치인의 급성장도 변수다.
브라질에서도 정당 조직과 TV 광고뿐 아니라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틱톡, 팟캐스트 등을 이용해 정치인이 유권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정치 경력이나 정당 내 위치뿐 아니라 후보 개인이 얼마나 강력한 대중적 인지도와 디지털 지지층을 확보하느냐도 정치적 성장의 중요한 조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선거운동의 영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역 조직과 정당의 지원, TV·라디오 선거방송에 SNS와 디지털 플랫폼을 결합하는 ‘혼합형 선거운동’이 당분간 브라질 선거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6년 총선은 대통령 한 명을 결정하는 선거에 그치지 않는다.
상원 81석 가운데 54석이 새로 구성되고 연방하원과 주의회에서도 새로운 정치인들이 경쟁한다. 차기 정부의 입법 환경뿐 아니라 2030년 이후 브라질 정치를 이끌 정치세력의 윤곽도 이번 선거에서 드러날 수 있다.
누가 대통령과 주지사에 당선되느냐 못지않게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어떤 차세대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살아남고 세력을 확대하느냐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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