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상파울루 시립 마리오 지 안드라지 도서관에서는 ‘가난한 나라들도 성장할 수 있는가? 신흥국을 위한 경제 전략’을 주제로 장 박사의 강연이 열렸다. 상파울루 주립대(UNESP) 출판사 등이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브라질의 대표적 정치경제학자인 라디슬라우 도보르 교수가 사회를 맡아 현지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이날 장 박사는 미국 중심의 다자무역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을 상세히 짚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언급하면서도 “트럼프는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미국이 스스로 만든 다자무역 체제를 무력화하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말기부터”라고 설명했다. 오바마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신임 판사 임명을 거부한 것을 시작으로, 트럼프 1기가 분쟁해결기구를 사실상 마비시켰으며,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이를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의 다자주의 이탈은 민주·공화 양당이 공유하는 전략적 방향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미국이 한국, 일본, 독일 제조업체에 미국 내 공장 이전을 압박해 모두 성사시킨다 해도, 미국 제조업의 세계 비중은 17%에서 21%로 오르는 데 그칠 것”이라며 1950년대의 압도적 영광(60%)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다자주의 붕괴가 신흥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냉철한 분석이 이어졌다. WTO의 기능 약화로 신흥국의 정책 자율성이 일부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연합(EU)-메르코수르 협정처럼 선진국과 맺는 양자·지역 통상 협정이 오히려 신흥국의 산업정책을 더 강하게 옥죄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박사는 “과거 WTO는 산업정책을 하기 싫어하던 게으른 관료들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고 표현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 박사는 ‘남반구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 간의 협력’ 부상을 새로운 돌파구로 제시했다.
그는 1995년 38%대였던 남반구 국가 간 무역 비중이 최근 55%를 넘어선 점에 주목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다자금융기구의 성장과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역(AfCFTA) 출범 등을 언급하며 “과거 개발도상국들이 외쳤던 경제 자립의 비전이 부분적으로나마 현실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 모델을 브라질에 적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장 박사는 “어떤 한 가지 모델로 한 나라의 경제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대표적인 예로 싱가포르를 꼽았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는 싱가포르를 자유무역의 모범 국가로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지의 90%가 국유지이고, 주택의 85%를 정부가 공급하며,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이 국영기업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묻힌다는 것이다. 장 박사는 “이는 신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 어느 한쪽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모든 영역에서 완벽한 단일 이론은 없으며, 현실을 직시하는 ‘경제학의 다원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성장 전략을 브라질에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정책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없지만, 산업 역량을 축적하고 자국 국책은행을 활용하는 등의 큰 원칙은 참고할 수 있다”고 조언하며 “현실은 복잡하다”는 묵직한 한 마디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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