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먼저 작업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은 ‘머리’다.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고,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단계다. 예컨대 한글을 그저 뜻을 전달하는 문자로만 쓸 것인가, 아니면 대자연의 형상을 품은 거대한 시각적 세계로 확장할 것인가. 이 생각의 한 끗 차이가 붓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으며 작품의 첫 길을 연다.
그렇게 열린 길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가슴’의 몫이다. 아무리 기발한 발상과 날 선 비판의식도 감성이 빠지면 타인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한글을 처음 접한 현지인들이 화선지를 보며 “참 예쁜 그림 같다”며 환하게 미소 짓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강력하고 따뜻한 통로가 바로 감성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예술가의 ‘발’은 정직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물리적 토대다. 작가의 생각은 작업실 안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전시를 준비하며 흘린 땀방울, 새로운 인연, 낯선 환경에 기꺼이 뛰어든 경험. 이 모든 궤적이 결국 작품을 구성하는 가장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 길 위에서 직접 부딪히고 느낀 생생한 경험만이 화폭 위에서 생명력을 얻어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손’은 이 모든 지난한 여정을 하나의 형상으로 완성해 낸다. 머리의 고민, 가슴의 울림, 발의 경험이 손끝을 통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본다. 소동파는 일찍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했다. 도구나 형식이 무엇이든, 진정 중요한 것은 손끝이 빚어낸 그 이면에 담긴 깊이일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선 하나를 흔들림 없이 긋기 위해 수만 번의 붓질을 거듭해야 한다. 지루하고 고독한 ‘반복’의 시간이 쌓여야만 비로소 억지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숨결이 터져 나온다.
특히 브라질이라는 다문화의 용광로 안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남다른 무게를 지닌다. 문화와 언어가 달라도 한글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가고, 그 조형미 안에서 감정을 공유할 때 우리는 이미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벗이 된다. 예술이 이국땅에서 훌륭한 문화적 가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결국 작가의 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특별한 마법이 아니다. 매일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며, 발로 뛰고, 손으로 빚어내는 작은 루틴을 묵묵히 견뎌내는 ‘수행’과 같다. 그 단순하고도 우직한 반복 속에서 예술은 자라나고, 이역만리에서의 우리네 삶도 함께 깊어간다. 오늘도 나는 화선지 앞에서 그 귀한 반복을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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