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Collor I」의 패배가 확실시되는 순간은 바로 환율이 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환율은 단 한 번도 안정적이진 않았지만, 7월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9월에는 이미 정책이 발표 때의 환율에 비해 두 배가 올랐고, 12월이 되자 4배 정도였다. 당시 많은 사람은 정부의 공식 환율을 피할 수 있다면 피했고, 대체적으로는 암달러 기준으로 가격을 조정했었다. 따라서, 실제 체감 물가는 정부 공식지수와는 매우 달랐었다. 이렇게되자 젤리아 경제팀에서는 「Collor II」을 발표한다.
1991년 3월에 공포되는 꼴로르 II는 물가 연동 폐지 방법을 취했던 꼴로르 I과는 다르게, 지난 정권에서 자주 사용했던 가격 동결을 시행한다. 가격동결 외에 경제학자들에게 그나마 ‘혁신’적이라고 인정받는 정책은 Taxa Referencial (TR – 직역: 기준지수)를 만들게 된다. TR은 다양한 수입과 이자의 월평균으로 계산하는데, 여기에는 세금의 순수입, 은행에 장기채권, 정부의 채권들을 기준으로 삼는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지수를 포워드 루킹(Forward Looking)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현상에서 발생하는 종합적인 정보들을 기반하여 형성되는 기대를 통해 구성되는 모델이다. 여기에 대표적인 예가 바로 채권들이다. 채권들은 저마다 일정한 이자를 보장하며 판매가 되는 금융 상품인데, 만기 시기에 따라 지수를 사전에 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비자는 해당 상품에 투자하면 대략 이자가 얼마나 나올지 계산이 가능하며, 이것은 시장이 미래를 바라보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기존 경제 정책에 사용되었던 지수들의 특징은 과거나 현재에 상승하는 가격으로 인해 올라가는 백 워드 루킹 모델 (Backward Looking Model)로 TR와 차이가 있었다.
TR을 기준으로 화폐의 가치를 조정하고자 했던 정부의 의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나도 혁신적이었는지, 아니면 자신들이 갖고 있던 계약들, 즉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된 가치로 못 받는 것에 두려웠는지, 시장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TR의 기준으로 화폐 가치의 조정은 위헌이라는 소송이 연방최고법원인 STF에 제기된다. 일반적으로 ‘느린’ 법률적인 절차를 가졌던 법원의 대법관들은 빠르게 움직여, 정책이 출범한 지 1달이 조금 넘은 채 TR로 가격 조정은 위헌이라는 판정받는다. 그리고 젤리아 경제부 장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을 한다.
PSDB의 헤알 정책 (Plano Real)팀의 준비

이때부터 PSDB(브라질사회민주당)에서는 새로운 팀이 생기기 시작한다. 헤알정책에 일원이자 페르난도 엔히케 카르도소 (FHC) 정부때 중앙은행장을 지낸 구스타보 프랑코에 따르면 젤리아 장관이 사임하자, 여당에서는 PSDB에게 내각 참여 가능성을 타진했고, 경제부 장관으로 조세 세하 (José Serra – PSDB로 대선후보를 2차례 지냈으며 상파울루 주지사와 시장을 역임했다)가 추천되는 분위기였다. 이때 세하는 자기 집에서 다양한 경제학자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는데, 그때의 팀이 한 명씩 늘어나 헤알 정책을 만드는 팀이 된다. 그렇지만, 꼴로르의 지지율은 매우 낮아지기 시작했고 이에 부담을 느낀 PSDB의 내각 참여는 불발되며, 세하의 입각은 물거품이 되지만, 브라질 경제의 안정화라는 사명 아래 주요 인원들은 모임을 지속해 나간다.
젤리아 후임으로는 브라질 미국 대사이던 마르씰리우 마르께스 모레이라 (Marcílio Marques Moreira) 외교관이 임명이된다. 마르씰리우 장관은 물가와 전쟁에선 한 발을 빼고, 1,239억 달러에 달하던 외채와 2년 연속 재정적자를 기록한 정부의 살림에 조금 더 집중하게되며, 모험적이었던 장관들과는 다르게, 외교관의 특징에 따른 신중한 입장으로 경제 문제 해결을 하고자 했다. 특히, 마르씰리우는 오랜 미국에서의 외교관 생활을 활용해 모라토리엄의 상황이었던 브라질의 외채 문제를 IMF에 지원받아 해결하고자 했다.
브라질 외채와 브래디 플랜
1987년도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브라질은 결코 외채를 방관하지만은 않았다. 먼저, 브레쎌 장관은 미국 정부와 지속해서 외채를 협상해나갔는데, 이때 그가 제안했던것은 1970년 뉴욕시가 외채를 해결한 방안이었던 상업은행들의 부채의 배제였는데, 당시의 미국 재무부 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는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후임인 니콜라스 브레디 장관은 80년대 중남미를 강타한 중남미 외채를 해결하기 위해 「브레디 플랜」을 출범하여, 브라질에도 새로운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브레디 플랜은 개발도상국들의 채무구제 방안으로 외채 원리금의 삭감과 IMF와 세계은행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었다. 브라질 같은 경우는 IMF, 세계은행 그리고 미주개발은행과 지속적인 협상을 했었고, 이때 협상가로 선임된 사람은 빼드로 말란(Pedro Malan)이다. 말란은 UN에서 ECOSOC (국제경제 및 사회 이사회) 이사직과 세계은행 이사회에 중미 및 브라질 담당이사를 역임한뒤에 BID (미주개발은행) 브라질, 에콰도르, 수리남 담당이사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이때 말란의 요청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아르미니오 프라가 (Armínio Fraga)이다. 마르씰리우 장관이 말란에게 외채 협상을 요청하자, 합류하는 조건으로 아르미니오를 중앙은행에 배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아르미니우는 PUC-RJ 경제학 출신으로 말란과 존 윌리엄슨 (Larida Paper에 지도 교수)의 지도아래 동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에 그는 Garantia 투자은행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내면서 FGV와 PUC-RJ에서 경제학를 강의한다. 중앙은행의 국제업무 실장을을 맡기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방문 교수와 세계적인 살로몬 브라더스 투자은행의 부사장을 지냈다. 특히 그가 중앙은행의 국제분야를 담당하면서 여러 차례 외환시장 투기 공격을 막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말란은 물가와 재정의 복합적인 문제을 겪고 있던 브라질의 환율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이라,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아르미니우가 자신이 외채를 협상할 동안 국내에서 수성전을 펼치면 협상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 될 수 있다 판단을 했다.

「브레디 플랜」은 세계은행과 IMF의 보증하에 외채와 관련된 채권인 Brady Bonds를 발행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권화 과정은 시장에게 맡기되 국제금융기구가 정한 범위안에서 협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며, 채무자는 자신의 자산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채권자는 채권구성의 구체적인 참여권을 보장 했다. 결국은 채무국은 근본적인 재정개혁을 통하여, 자본을 형성하는 노력을 보여 해당 채권을 국제사회 협상하는 것이다. 비록 「브레디 플랜」이 1987년에 시작되었지만, 브라질은 1992년 7월 말란의 리더십 아래에 550억 달러의 외채의 협상이 시작된다. 여기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의 숫자를 더 제시한다면, 1992년 당시 브라질의 GDP은 3873억달러 수준이었으며 (참고: 2021년에는 1조 8030억 달러이다).
비록, 브레디 플랜으로 브라질의 모든 외채를 청산하지는 못하였지만, 큰 숨통을 띄어준 것은 분명하다. IMF에 따르면 브레디 플랜이 생산한 평균 절감은 약 35%라고 한다. 브랜디플랜의 이전과 이후의 평가에 대해서 IMF의 자체 평가를 따르면, 플랜 이전에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불이행에 대해 IMF에 제기하면, 해당 채무국에 대한 IMF지원이 중단된다. 1989년부터는 IMF는 정책을 바꿔 금융지원을 이자를 성실히 이행하는 조건을 내세워, 채무국들이 활동할 수 있는 룸 (Room – 영역)을 보장해 준다.
저자: 이재명 (Klavi 오픈뱅킹 핀테크 파트너, OKTA 상파울루 홍보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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