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세상의 변화는 눈부시게 빠르다. 생성형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까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컴퓨터가 서체를 디자인하는 등 인간만의 영역이라 믿었던 창작의 문턱을 기술이 거침없이 넘어오는 모습을 보며 솔직한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두려움 속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본질이 있다.
AI의 결과물은 완벽에 가깝다. 수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오차 없는 비율과 최적화된 구도를 순식간에 도출해낸다. 하지만 그 매끄러운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를 허전함이 남는다. 그곳에는 ‘떨림’이 없기 때문이다.
붓을 쥔 손끝의 미세한 망설임, 먹물이 종이에 스며들 때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번짐, 한 획을 긋기 전 잠시 들이쉬는 숨결은 계산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만의 증거다. AI가 창작의 문턱은 넘었을지 몰라도 창작자의 심장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 심장은 데이터로 치환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글을 생각해보게 된다.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이라는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가 만나 하나의 글자를 이룬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품었던 핵심 가치는 효율이 아닌 배려였다. 글을 몰라 고통받는 백성 누구나 쉽게 익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한 인간 중심의 철학이다.
그렇기에 한글에는 여백이 존재한다. 자음과 모음, 글자와 글자, 획과 획 사이의 비어있는 공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독자가 숨을 쉬고 사유하며, 글을 쓴 이와 읽는 이가 말없이 눈을 맞추는 소통의 자리다. 이러한 여백의 미학은 속도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의 언어로는 결코 번역될 수 없다.
거센 기술의 파도를 거스를 수는 없으며, 그 힘을 지혜롭게 빌리는 것 역시 필요하다. 기술은 우리의 한글을 더 넓은 세계로 실어나르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배의 키를 잡고 목적지를 정하는 철학만큼은 반드시 인간의 것이어야 한다.
파도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더 간절하게 따뜻한 손을 찾기 마련이다. 완벽한 디지털 화면보다 조금은 삐뚤어진 손글씨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는 그곳에 사람이 머물고 있어서다.
붓끝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 한, 그리고 한글의 여백 속에 담긴 배려가 살아있는 한 우리의 마음은 복제되지 않는다. 기술이 아무리 정점을 향해 달려가더라도, 결국 인간은 인간의 온기 곁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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