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브라질 언론 G1과 가제타 두 포부(Gazeta do Povo) 등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빠라나 땅에 내린 한국의 뿌리’를 주제로 기획되었다. 1966년 낯선 이국땅에 첫발을 디딘 이민 선구자들의 노고를 기리고 동포 사회의 화합을 다지기 위한 자리다.
빠라나주 가톨릭 농업 이민단은 1965년 11월 17일 부산항을 떠나 55일간의 항해 끝에 이듬해인 1966년 1월 12일 빠라나과(Paranaguá)항에 도착하며 브라질 이민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당시 도착한 53가구, 약 350명의 한인은 낯선 환경 속에서도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정착을 시도했다.
기념행사는 지난 17일 이민자 후손과 현지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만찬으로 시작해, 18일 꾸리치바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서 열린 공개 미사와 성모상 행진으로 이어졌다. 특히 1966년 이민선에 실려 함께 브라질로 온 ‘은혜의 성모상’이 행진에 등장해 의미를 더했다.

이민자들은 당시의 고단했던 삶도 회고했다. 빠라나주 티바지 지역 등의 농장에 정착했던 이들은 전기와 수도도 없는 판잣집에서 생활하며 맨손으로 땅을 일궜다.
1966년 입국한 김문옥(66·여) 씨는 “전기도 위생 시설도 없는 곳에서 하루아침에 농부가 되어야 했다”며 “당시 한국의 가난과 전쟁 공포를 피해 떠나왔는데, 그때는 브라질 상황이 한국보다 훨씬 좋았다”고 전했다.
함께 이민 온 이만용(72) 신부는 항해 도중 말레이시아에서 난생처음 바나나를 배불리 먹었던 기억과, 포르투갈어를 몰라 그림을 그려가며 소통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 신부는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났고 여전히 한국인”이라며 “이것은 내 역사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은 한인 이민자들이 근면과 성실,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브라질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다고 평가했다. 이민자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오가는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 결과 후손들은 의사, 변호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으로 진출해 브라질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러한 한인 사회의 성장은 최근 K-팝과 K-드라마 등 한류 열풍과 맞물려 브라질 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지난해 하찌뉴 주니오르 빠라나 주지사의 방한 이후 꾸리치바 인근에 LG전자 가전 공장이 건설되는 등 경제 협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30년 넘게 한인 공동체를 지켜본 안드레(André) 신부는 “한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과 기억을 잃지 않았다”며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문화의 토대”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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