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1960년대 전쟁의 상흔과 가난을 뒤로하고 희망을 찾아 지구 반대편 파라과이로 떠난 한국인들의 이민 역사가 60주년을 맞았다.
척박한 환경과 문화적 차이 속에서도 특유의 근면함과 강인함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군 파라과이 한인들의 발자취는 오늘날 양국 우호 관계의 든든한 초석이 되고 있다.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7화 파라과이편은 지구 반대편 두 나라 간 60년간 지속된 특별한 인연을 조명했다.
1965년 95명의 한국인이 농업 이민자로 파라과이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 개발 초기 단계로 많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고, 파라과이는 광활한 토지를 경작할 노동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랐던 척박한 땅과 부족한 지원은 초기 이민자들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결국 많은 이들이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로 이주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보따리상, 이른바 ‘벤데도르(Vendedor)’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집집마다 방문해 판매하는 이 새로운 방식은 현지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한인들이 파라과이 사회에 정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남미 파라과이 국경도시 시우다드델에스테에서 ‘쇼핑 테라노바(Shopping Terra Nova)’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명세봉 대표는 젊은 시절 파라과이로 이민 와 벤더로 일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회상했다.
명 대표는 “말이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소통하며 물건을 팔아야 했지만, 파라과이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다”며 “이러한 경험이 훗날 사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명 대표는 과거 행상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한국 제품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K-뷰티와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파라과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현지 시장의 특성과 소비자들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특유의 성실함으로 식당, 식료품점, 편의점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며 도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파라과이 상점들이 문을 닫는 시간에도 영업을 이어가는 한인들의 모습은 현지인들의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낯선 땅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다. 1972년 토요 한글학교가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1992년에는 대한민국 정부와 교민 사회의 지원으로 정규 교육기관인 파라과이 한국학교가 설립되어 한국어와 한국 역사, 전통문화 교육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파라과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한인들은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파라과이 유력 방송국의 간판 앵커로 활동하며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욜란다 박(박영희) 씨가 있다. 그는 한국과 파라과이를 잇는 민간 외교관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또한 이과수 폭포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펼치는 김순옥 화가는 예술을 통해 양국을 연결하며 문화 교류에 기여하고 있다.
한인 이민자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활약은 파라과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는 양국 간 문화 교류와 무역 확대로 이어지며 더욱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파라과이 한인 이민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공유하는 특별한 역사를 바탕으로 더욱 긴밀한 협력과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이 기사는 아리랑TV ‘디플로맷 아카이브: 히든 스토리’ 7화 파라과이편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