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브라질은 전쟁이 없는 나라로 매우 유명하다. 이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매우 중립적인 스탠스를 갖고 있어 비교적 그 어느 국가보다 분쟁과 관련해 자유로운 위치해 있으며, 한편으로는 분쟁국 간의 조정역할까지도 한다. 그런데, 과연 브라질에서 전쟁이 없었을까? 필자는 80년대 후반 태생으로 다행스럽게 브라질의 초인플레이션 시기를 겪어보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은 이 기간을 그 어느 전쟁보다 더 치열했던 시기라고 한다. 그렇다, 브라질 국민들이 몸소 참가한 전쟁은 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된 하이퍼인플레이션 또는 초인플레이션 시기로 경제학자들은 이 기준을 월 단위 물가가 두 자릿수로 정한다. 이때의 서민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저축보단 상하지 않는 음식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은행 계좌를 가진 브라질 국민의 숫자가 절반 (편집자 주: 코로나 판데믹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은행 계좌로 입금하게 되어 대략 6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증가) 수준이지만, 그때는 터무니도 낮은 숫자였다. 어쨌든, 당시의 서민들은 급여를 받게 되면, 슈퍼마켓으로 뛰어가 새 가격표를 붙이는 점원 (Remarcador)보다 더 빠르게 제품을 카트에 넣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한다.
끄루자도 정책을 구성한 경제팀
사르네이 정부의 경제팀은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관성 인플레이션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비전통적인 방식의 경제 정책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당시의 정부는 지지율도 매우 낮은 상황이라 모든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게 될 전통적인 방식은 취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브라질 정부의 경제팀원 중 PUC-RJ 교수였던 뻬르시오 아리다는 1985년도에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시킨 이스라엘에 방문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수축경제정책으로 물가 연동 중단은 물론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동결시켰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가격표를 통해 시장의 공급가격을 조정 시켜 나갔다. 이스라엘이 취한 비전통 정책은 성공적으로 물가는 안정화되었었고, 이것을 가까이서 본 뻬르시오는 브라질 물가안정을 위해 끄루자도 플랜을 준비한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원인에 대해선 의견을 통일했지만, 해결 방책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뻬르시오 아리다와 안드레 라라는 일명 라리다 (Lara Resende-Arida) 플랜으로 핵심 논리는 달러와 연동이된 가상화폐를 도입해, 두 개의 화폐를 운용하자는 반면, 시코 로뻬스 (Chico Lopes, PUC-RJ 경제학 교수), 브레쎌 뻬레이라 (Bresser Pereira, FGV 경제학 교수), 요시아키 나카노 (Yoshiaki Nakano, FGV 경제학 교수)는 적극적인 수축정책으로 임금과 가격의 동결을 주장했었고, Unicamp 출신들인 벨루죠 (Luiz Gonzaga Belluzzo, Unicamp 경제학 교수), 조엉 마누엘 까르도죠 멜로 (João Manual Cardoso Mello, Unicamp 경제학 교수)은 로페스-쁘레쎌-나카노과 결은 같지만, 소득분배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견은 많이 갈랐지만, 대다수 인원들은 정부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안드레 라라는 중앙은행에서 외채 협상을 담당하게 되었고, 뻬르시오 아리다는 재무부 사회경제정책 담당, 벨루죠는 재무부 차관, 조엉 마누엘은 재무부 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다. 이외에도 PUC-RJ 출신으론 예일대 경제학 박사 에지마르 바샤가 IBGE (브라질지리통계원) 원장, USP 경제학출신이자 버클리 경제학 박사인 안드레아 깔라비 (Andrea Calabi)가 IPEA (경제응용연구소) 소장, 하바드 경제학 박사출신 시코 로페스 (Chico Lopes)는 기획부 장관 보좌관, BBA투자은행 창립자 페르넝 브라셸 (Fernão Bracher)까지, 말 그대로 국내외 경제학 석학들과 경제의 실무를 아는 사람들이 모인 드림팀이었다.
핵심이 빠진 끄루자도 정책
끄루자도 정책의 초안에는 가상화폐 신설이 있었다. 이를 뒷받침한 논문이 Larida Paper인데, 이 논문은 두 가지의 중요한 배경을 기반으로 가상화폐 신설을 제안한다. 첫 번째는 정부의 재정수지인 수입과 지출 그리고 금융정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으로 과도한 재정지출을 예방하고, 시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금융정책들을 제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수요와 관련해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예방하며 농업을 촉진하기 위한 환율 절하도 없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이미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물가가 발생하는 이유는 화폐의 물량이나 소비제품 원가 상승으로 인한 것이 아닌, 오로지 관성인플레이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 간주한다.
여기서 이들이 제안한 가상화폐의 역할은 관성 인플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퇴치하기 위한 방안이다. 간단히 논리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에게 두 개의 화폐에 대한 기준점과 선택권을 부여하며, 국민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올리는 방안이다. 여기서 가상화폐는 달러와 연동이 되어 있지만, 실제 물가와는 연동이 되어있지 않은 비물가연동화폐로, 국민들은 실제 통용되는 화폐는 물가 상승으로 가치는 떨어지는 것을 보겠지만, 가상 화폐는 물가와 연동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지 않은 채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목격할 것이고, 많은 사람이 가상 화폐 기준으로 가격을 연동하기 시작한다면, 물가가 잡힌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그렇지만, 이들이 제안한 가상화폐 신설은 정부 법률가들의 위헌이라는 의견으로 실제 현실화가 되지는 않게 된다.
그렇게, 사르네이 대통령은 1986년 2월 핵심이 빠진 끄루자도 정책을 의회에서 절대적인 지지로 통과시킨다. 이때까지만 해도 브라질 경제는 약 5% 성장하고 있었고 물가는 1985년 230% 그리고 월 15% 정도였다. 결국 끄루자도 정책은 물가 연동 중단과 가격 동결이라는 무기들을 갖고 물가와의 첫 대전을 시작한다.
<끄루자도정책의 주요 내용>
항목 | 설명 |
새 화폐의 도입 | 새 화폐는 끄루제이로에서 끄루자도로 변경하며, 1000 끄루제이로는 1 끄루자도로 변환한다. |
가격 동결 | 모든 소비 물품의 가격은 동결된다. 또한, 일반 시민은 자발적으로 물가 감시자 (Agente Fiscalizador)이 되어, 가격 동결을 위반하는 상점을 고발 할 수 있다. 가격 동결 중단은 오로지 행정부의 결정으로 가능하다. |
물가연동중단 | 1964년 깜뽀스-불료엥스가 만든 국가재정 물가 연동 의무제 (Obrigação Reajustável do Tesouro Nacional -ORTN)는 폐지되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 국가재정 의무를 (Obrigação Tesouro Nacional – OTN)르 만든다. 또한 국가재정 또한 1987년 3월3일까지 동결한다. 다만, 근로자 연금(FGTS, PIS/PASEP)와 저축통장의 화폐가치 변동은 유지된다. |
급여: 끄루자도 변환 | 급여는 소비자물가지수(IPCA) 기준치인 8%로 끄루자도로 변환된다. 최저임금은 16% 인상한다. |
급여: 물가연동 | 급여의 물가연동은 물가가 20%에 도달해야지만 조정이 가능하다. |
월세, 학비, SFH (주거재정 시스템) 조정 | 해당 비용들은 기준치에 부합하여 조정된다. 기준치는 지난 6개월 평균치로 정한다. |
환율정책 | 환율은 1달러에 13,8 끄루자도로 정한다. 다만, 환율은 일시적 동결로 중앙은행은 필요에 따라 개입할 수 있다. |
이 시기에 브라질에 거주했던 분들은 잘 아는 게 바로 사르네이의 감시관 (Fiscal de Sarney)이다. 끄루자도 정책의 핵심은 가격동결이기 때문에, 넓고 광활한 브라질 땅에서 거래되는 품목들을 정부가 관리하긴 문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들에게 감시관 역할을 요청하였고,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이 Fiscal de Sarney라고 외쳐 정부에서 발행되는 가격표에 반하는 가격 정책을 펴는 상점들 대상으로 ‘사르네이 대통령 이름으로 (Nome do Presidente Sarney)’ 문을 닫는다고 외치곤 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바로 정책 발표 그다음 날에 일어난다. 1986년 3월 1일 꾸리찌바의 한 슈퍼마켓에서 한 시민은 카운터에서 두 개의 마요네즈 통을 갖고, 방금 막 가격표를 붙였다는 다른 마요네즈 통을 보여주면서 크게 분노하며, 곧장 상점 입구 쪽으로 가서 문을 닫으면서 그는 “조세 사르네이, 우리의 새 공화국 대통령의 이름 그리고 국민의 명으로 이 상점을 닫는다”라고 외쳐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게 된다.
<1986년 1월에서 12월까지의 물가>
약 20년 동안 국민은 군부독재 동안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데, 민주정권이 들어서고 감시관을 역할을 자처한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모든 가격의 동결로 물가를 잡히기 시작한다. 정책이 시행된 3월에는 전월 15%의 물가가 5.5%로 내려갔으며, 4월에서 7월까지는 1% 미만대로 유지가 된다. 국민들을 열광하기 시작했고, 정통성이 없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일시적이지만 가파르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저자: 이재명 (Klavi 오픈뱅킹 핀테크 파트너, OKTA 상파울루 홍보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