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오늘 파벨라와 관련된 컨텐츠를 준비하게 된 큰 이유는, 몇 일 전에 우연히 보게 된 한 유명 경제학자의 유튜브 영상 때문이다. 어느 정도 조회수가 있는 영상이라, 흥미를 갖고 보게 되었는데, 파벨라와 관련된 내용만큼은 너무 많은 왜곡이 있어, 한번 제대로 된 정리가 필요 할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브라질에 살면서, 파벨라는 그렇게 멀지도 않지만, 가깝지도 않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저긴 그냥 빈민가야, 위험한 곳이냐라고만 스쳐 지나가는데, 오늘 한번, 파벨라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손쉽게 정리를 해서 공유를 드리고자 한다.
시작: 파벨라의 유래
필자도 이번 칼럼을 준비하면서까지 알고 있었던 파벨라의 유래는, Lei Aurea (1888년) 노예제도가 폐지되면서, 해방되어 갈 곳이 없었던 노예들과 그의 후손들이 주요 외곽에 거처를 마련하면서 시작이 되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남동부 (Sudeste) 일자리가 많이 몰리면서, 브라질 곳곳에 있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게 되면서, 일종의 커뮤니티 형식으로 형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상파울루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이삐랑가 지역에 있는 Heliopolis이다.
그런데! 이게 반만 맞았다는 사실.. 구독자님들 중에서 브라질 역사를 공부하셨던 분들은 Guerra de Canudos (1896년) 라고 들어보셨을것이다. Canudos는 Bahia주에 있는 도시인데, 여기서 종교 리더인 Antonio Conselheiro가 이끄는 반란군과 공화국 군대와의 전쟁이다. 12,000명 (공화국) 대 25,000명 (반란군)의 전쟁은 공화국의 승리로 총 25,000명의 사상자 (반란군 2만 명)를 냈는데, 이때 정부에선 군인들에게 급여 대신에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정부에서 그걸 파기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정부 전쟁 부 청사 앞에서 항의를 하던 군대가 그 근교에 있는 Morro de Previdencia에 설치를 하면서 생긴 게 바로 Morro da Favela 이다. Favela는 Canudos에 있던 나무의 이름인데, 이 나무가 속씨식물이 달려 있었고, 여기엔 가시가 있어, 만약 살이 닿으면 가려움증이 생겨, 아마도 공화국 군대가 꽤 고생을 한 것으로 봐, 유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이때 대포를 포장했던 목재 포장들이 있었는데, 당시의 군대들이 목재포장들을 이용해 집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이게, 파벨라의 유래이니, 만약 누군가가 파벨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질문을 한다면, Canudos 전쟁을 통해서 생겨났다가 이야기를 해주시길 바란다.
진화: 노예제도의 폐지와 도시화
Lei Aurea (노예제도 폐지)가 공포되면서, 정부가 이에 대한 적응 작업을 하지 못한 점은 많은 인류학자의 비판이기도 하다. 단순히, 사회 적응 문제를 넘어, 주거 문제에 대한 정책을 못 했던 점이 큰 비판이다. 필자는 이래서 브라질에서 무토지 농민운동 (MST)이 강하다고 느껴졌다. MST의 가장 큰 비판은 정부가 주거 안정에 대한 정책의 비판인데, 이들은 과격하게 토지를 점거하여, 주거 환경을 만드는 운동을 한다. 아무튼, 이와 관련되어 다른 흥미로운 점은 1890년에 공포된 형법이다. 이 형법은 Capoeira를 범죄라고 단정하는 듯, 미래의 사회 법을 제정하는 데에 매우 엇박자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브라질은 중남미에서 가장 늦게 노예제도가 폐지됐으며, Getulio Vargas (1930-45, 1951-54 대통령) 시대에 빠른 산업화로 일자리가 주요 도시에 몰리자, 파벨라는 함께 성장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70년대에 가속화된 성장이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주요 파벨라들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이런 파벨라들을 우리가 오늘날 수치로 본다면, 작년 IBGE 기준으로 512,77만 집이 총 734개의 도시에 13.151개의 파벨라에 나눠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파벨라는, Invasao, Grota, Baixada, Comunidade, Mocambo, Palafita, Loteamento, Ressaca, Vila등으로도 불린다. 이는 2010년에 진행된 인구조사에 비해서 59%가 성장했고, 파벨라의 숫자 역시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도시화 진행으로 일자리가 몰려 있는 상파울루 같은 경우 가장 큰 파벨라인 Paraisopolis가 있고, 인구 숫자만 해도 106만 명이 집중되어 있다.
파벨라의 지금은
오늘 필자는, 파벨라에 대해 유래를 살펴보았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경찰이나 마약과 관련된 매우 부정적인 이야기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야기를 끝마무리 하고자 한다. 작년, Band의 보도에 따르면 파벨라의 시장은 1200억헤알 (27조원)이라고 하는데, 파벨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jaubra
우버 운전기사 역시 파벨라에 들어가기 무서워하지 않는가? 그래서 생긴 게 바로 jaubra다. Jaubra는 우버와 똑같은 형식으로, 공유차량모빌리티 앱인데, 파벨라에 집중적으로 활동을 한다. Jaubra는 계속 발전해, 이전은 음식도 시킬 수 있고, 계좌형식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
Banco Mare
파벨라를 위한 핀테크로, 선불 체크 카드와 카드 단말기를 제공한다. 대체로 신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신청 할 수 있고, 선불 체크 카드라 리스크가 작다. 심지어 이 핀테크는 블록체인 기반으로 디지털 코인도 출시를 했고 투자도 Mastercard 받았다. 지난 2018년에는 미국 BFA와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JP모건의 후원을 받은 Catalyst Fund 엑셀러레이터 상도 수상했고 페이스북과 위워크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Funk (펑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펑끼라는 음악 장르는 이제 브라질 젊은이들의 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가사에 매우 선정적인 내용이 있어, 보수주의자들은 펑끼는 음악이 아닌 범죄라고 단정 짓기도 하지만, 가사 내용 자체가 파벨라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젊은이들의 로망이 담겨 있다. 펑끼는 90년대 초반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최근 Kondzilla를 통해 더욱더 많이 홍보되고 있다. Kondzilla는 브라질 내 최대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 하는 음악프로듀서로 현재 6300만명의 구독자가 있다.
오늘은, 파벨라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 배경 진화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았다. 며칠 전에 아는 분과 치킨집을 파벨라 근교에 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는 완전 대박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물건을 팔아야, 살아남지 않을까?
칼럼저자ㅣ 이재명 (브라질 100대 혁신스타트업에 선정된 CrediGO의 CMO 마케팅 임원)
▲OKTA 홍보마케팅 위원장 ▲FIAP 디지털 마케팅 대학원 수료 ▲마켄지 광고홍보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