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어느 날 시골길을 지나가다 문득 마주친 감동이 있다. 허리를 굽혀 논두렁에 벼를 심고 있는 농부의 모습이다. 한 포기, 또 한 포기. 그 손끝엔 땀이 맺혀 있었고, 그 땀방울 사이로 미래가 자라고 있었다. 나의 작업이 떠올랐다.
나는 말한다. “나는 한글을 심는 농부다.”
실제로 나의 작업은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씨앗을 심듯, 한 글자 한 글자 자음과 모음을 분해하고 조합하는 과정을 거친다. 내가 심는 씨앗은 ‘ㄱ’이고, ‘ㅏ’이며 ‘ㄹ’이고 ‘ㅎ’이다.
그리고 그 씨앗이 피워낸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어도, 문장도 아닌, 하나의 ‘형태’다.
한글은 나에게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곧 조형이자 예술이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에서 인체를 꺼내듯, 나는 평범한 글자 속에서 형상을 꺼낸다. 눈에 익은 자음과 모음은 나의 손을 거쳐 나무가 되고, 구름이 되며, 사람의 실루엣이 된다.
내가 주목한 건 ‘노동’이다. ‘예술은 고된 노동이다’라는 고흐의 말처럼, 나는 예술이란 결코 한순간의 영감이나 재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극한 직업’을 선택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아이디어를 내고, 이미지를 찾고, 또 다시 그 위에 자음과 모음을 새긴다. 대중에게는 그저 팝아트처럼 가볍고 감각적인 이미지일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수천 번의 붓질한것과 수만 번의 숨이 깃들어 있다.
나의 작업을 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건 예술 이전에 자기수양이며 기도다.”
기도하듯 묵묵히 한 글자씩 심고, 기다리고, 키워내는 나의 손끝엔 꾸준함의 근면이 있다.
그것은 단순한 한글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고, 그 뿌리 깊은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다.
한글을 심는 농부처럼 밭을 일구고 씨앗을 심고, 예술이라는 터밭에서 정성껏 키워온 나의 땀과 손끝.
그 속엔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가 따스한 마음으로 짜주시던 털장갑처럼
한글과 함께 예술의 향기가 피어날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조용히 한글을 심는 농부로 살아간다.
햇살보다 따뜻한 글씨 한 줄, 그 안에 담긴 누군가의 마음이 피어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