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선생님, 저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브라질 동포사회에서 캘리그라피와 한국화를 가르치다 보면, 종종 이런 하소연을 접한다. 붓끝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 느껴지는 학생들의 속상함. 그 한숨 속에는 낯선 타국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 생활의 고단함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무게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브라질 동포들의 삶은 결코 여유롭지 않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터에서 땀 흘리고, 가정을 돌보며, 팍팍한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잠시 시간을 내 붓을 들고 화선지 앞에 앉는 일은 어쩌면 작은 사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귀한 시간을 통해 무언가 의미 있는 성취를 얻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이든, 혹은 그 어떤 기능적인 분야든, 특별한 경지에 이르기 위한 왕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늘 이 말을 강조한다.
“꾸준히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재능입니다.”
처음부터 능숙한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손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아 답답하고 좌절할 때도 많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꾸준히,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손끝에 감각이 살아나고 붓은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러워진다. 마음먹은 대로 즉각 행동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붓을 다잡는 그 의지야말로 비범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수업 중에 나는 학생들에게 친근한 비유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 “여러분, 어릴 때 일기 써본 적 많죠? 처음에는 거창하게 시작해도 결국 ‘오늘 비가 왔다. 끝.’ 한 줄로 마무리될 때도 있잖아요. 그래도 매일 써보는 겁니다. 길게 못 쓰면 짧게라도요. 중요한 건 매일 손을 움직이는 거예요. 매일, 일기 쓰듯이.”
그랬더니 한 학생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저 어제 일기에 ‘밥 먹고 잤다’ 딱 한 줄 썼어요!”
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아주 잘하셨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소박해도 괜찮다. 짧아도 괜찮다. 그 짧은 기록과 작은 붓질들이 모여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길어지고 깊어진다. 단순히 글씨와 그림의 형태를 넘어, 그 안에 쓰는 이의 삶과 마음이 깃들게 된다.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괜찮다. 잠시 붓을 놓았더라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힘, 그것이 쌓이고 쌓여 꾸준함을 만들고, 결국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그림과 글씨를 완성하게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 또한 매일 배운다. 완벽한 형태의 글씨나 기교 넘치는 작품보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붓을 잡고 작은 성취에 미소 짓는 학생들의 눈빛이 훨씬 더 값지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조용히 나 자신에게, 그리고 학생들에게 되뇌인다. 재능은 하늘이 주는 특별함이 아니라, 매일의 성실함과 꾸준함이 빚어내는 노력의 결정체라고. 붓끝에 스민 이민자의 삶의 애환 위로 피어나는 ‘꾸준함’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