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재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는 페르난도 엔히끼 (FHC)는 사회학자이었지만 많은 경제학자와 두루두루 지냈었고, 경제 주제에 대해 그렇게 문외한 인사는 아니었다. 그는 말란 (Pedro Malan)을 통해 80년대 인플레이션 문제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던 안드레 라라 헤센지 (André Lara Resende – MIT경제학 박사)와 뻬르시오 아리다 (Pérsio Arida – MIT 경제학 박사)들을 부른다. 이들 둘은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던 Larida 논문의 저자들이었지만, 사실상 처음으로 비전통적인 방식으로 물가를 잡을 방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또한, 이들은 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공통점이 있었지만, PUC-RJ 경제대학원에서 교수직을 역임했었고, 1985년도 ‘끄루자도 플랜’에 직접적인 역할들을 했었다.
그리고, FHC의 팀이 조금씩 구성되기 시작한다. 비록 이따마르 대통령으로부터 ‘백지수표’를 받았지만, 그가 임명을 할 수 있는 자리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먼저 선발대로 ‘끄루자도 플랜’에 활동했고 전 IBGE (브라질 지리통계원) 원장이자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에지마르 바샤 (Edmar Bacha)가 재무부 장관 특별보좌관으로,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윈스톤 프릿츠 (Winston Fritsch)가 재무부 차관 그리고 하버드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은 PUC-RJ 경제학 출신인 구스따보 프랑코 (Gustavo Franco)가 재무부 차관보로 임명이 된다. 이들 3명 중 윈스톤만 빼면, 둘 다 PUC-RJ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고, 이후에도 많은 PUC-RJ 출신들이 합류하여, PUC-RJ은 명 실상 브라질의 경제 명문대학교로 자리를 잡는다. 그렇지만, 팀원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FHC 이전의 3명의 재무부 장관들의 평균 3개월인 것을 감안하면 모든 이들은 FHC도 그저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해임될것이라고 생각 했기때문에, 저명인사들은 당시 정부에 참여를 꺼렸었다.
분명 도전과제는 어마했었다. 당시의 물가는 이미 월 30% 가까웠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정부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희망보단 낙담했었다. 또한 이전에 추진된 경제 정책들은 이미 5번에 달했기 때문에, 또 다른 경제 정책이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1993년까지 공포된 통화들의 기간과 누적 인플레이션>
통화 | 시작 | 종료 | 기간(월) | 누적 물가(%) | 월평균 물가 (%) | 연평균 물가 (%) | 환율 |
끄루자도 | 86.05 | 88.12 | 35개월 | 5,699% | 12.3% | 302% | 1/1,000 |
끄루자도 노보 | 89.01 | 90.02 | 15개월 | 5.937% | 31.4% | 2,559% | 1/1,000 |
끄루제이루 | 90.03 | 93.07 | 41개월 | 118,590% | 18.8% | 694% | 1/1 |
출처: 브라질 재무부, 정리 PUC-RJ 경제팀
특히, FHC입장에서도 조금 부담이 있었다. 불과 17개월 뒤에 대선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 정책을 준비한다고 해도 그 강도를 어떤 수준으로 해야 할지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나, 여러 차례의 경제정책은 가격동결이라는 수축경제정책으로 일시적인 소비 중단으로 물가를 잡는 거지만, 이는 경제를 위축시켜 실업률의 증가와 시장 생산성을 저하해 모든 이들을 고생토록 하는 부정적인 현상을 가져온다. 하지만, 반대로 1993년 5월은 대선까지는 17개월이 남았고, 새 정권이 들어선다고 해도 이들이 물가 안정 정책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은 대선이 공식적으로 종료가 되는 11월에서 12월까지인 2개월가량으로 매우 짧았기 때문에, 정부의 일원으로써 눈덩이처럼 커지는 문제를 쉽게 외면 할 수 없었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개혁
FHC의 경제팀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강도 높은 약을 투여하는 것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는데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합류는 하지 않았지만, 팀원들의 숫자는 조금씩 늘기 시작 했고, 과거의 경제정책들이 왜 실패했는지 또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에 집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여기서 ‘끄루자도 플랜’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이구동성 ‘국가재정수지’ 문제를 주목했었다. 그렇게, 준비된 경제팀의 첫 계획은 PAI (Programa Ação Imediata – 즉각 실행프로그램)이다.
PAI는 1993년 5월에 발표된 정책으로 총 6개의 분야인 (1) 재정지출 감소, (2) 주 및 시 정부 지원, (3) 정부 수입 증가, (4) 주립은행, (5) 연방은행, (6) 민영화 그리고 58개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PAI가 만들어진 배경에 관해 설명하는데, 지금도 읽어보면 자주국으로서 번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나열하고 있다. 사실상 PAI는 재정 건정성을 확보를 위한 개혁이었지만, 이외에도 ‘탈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복합적인 정책을 취했었다.
<PAI의 일부 내용>
- 브라질은 자유민주주의 정부의 정립과 자주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선 현존하는 정부 부재에 대한 문제와 국민의 하루하루를 지옥으로 만드는 사회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 사회의 부채는 경제의 지속 성장 가능 모델이 구현되어야지만 해결될 수 있다.
- 브라질 경제가 힘차게 성장할 방법은 직면한 ‘슈퍼 인플레이션 (Superinflação)’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문제는 국가에 투자를 중단하고, 생산활동을 어지럽게 한다.
- ‘슈퍼 인플레이션’은 궁극적인 해결은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들이 재정을 온전하게 운영해야지만 가능하다.
- 정부의 재정은 정치 세력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들의 소이익을 내려놓고 집중해야지만 해결할 수 있다.
지금 와서 다시 읽어도, 모든 정부를 포함해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재정’에 대한 ‘개념’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한다. 그만큼, 이때의 브라질 재정 상태는 매우 안 좋았고 심각하였다. PAI를 발표하던 재무부 장관인 FHC는 발표 중에 “인플레이션은 숨어서 암살하는 자객”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잡기위해선 먼저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하였다. PAI는 그렇게 브라질이 겪고 있는 현재의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나열하고 있었다. 먼저 중앙은행과 각 주 그리고 시립은행 간의 관계 설정이다. 당시에는 주립은행들은 엄연히 주 정부 산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 은행의 부채 문제도 해결이 되어야 했었다.
그리고 중앙은행에는 이따마르 대통령의 개입으로 총재가 교체된다. 선일자수표인 Cheque Pré-datado는 상업에서의 오랜관례였는데, 이를 공식화하자는 의견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의견들이 충돌했었다. 이때 중앙은행 총재였던 시메네스 (Ximenez)는 공개적으로 반대하자, 이따마르 대통령은 곧바로 그의 해임을 지시한다. 그리고 BNDES의 총재도 발레 두 히우 도씨 (Vale do Rio Doce)의 민영화 문제로 대통령과 마찰로 사임을 한다. 이렇게 국가의 통화정책을 총괄하는 중앙은행과 민영화를 주도하고 있었던 BNDES의 총재직이 비게되자, FHC는 자기 팀 구성원들로 바로 채운다. 중앙은행 자리에는 워싱턴에서 외채를 협상하던 빼드로 말란이 총재로 취임하게 되고, BNDES총재직에는 끄루자도 플랜에 참여했던 빼르시오 아리다(Pérsio Arida)가 합류한다. 그리고 아리다와 함께 끄루자도 플랜에 참가했고 FHC를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던 안드레 라라(André Lara)는 말란 맡고 있던 외채 협상가 자리로 옮기게 된다.
이들 그룹은 점점 인원이 많아지고 있었고, 모두가 하나같이 ‘중앙은행 총재급’이자 경제 석학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 간은 ‘자리’에 대한 싸움은 없이 국가 경제 안정화라는 사명감으로 서로 간의 ‘지식’에 기반한 신뢰감이 있었다. 이렇게 ‘헤알 플랜’의 팀이 재무부에서 구성이 되고 있었고, 의회에선 마리오 꼬바스(Mário Covas)가 상원 의회 그리고 조세 세하 (José Serra)가 하원 의회에서 경제와 관련된 문제를 주도하고 있었다.
저자: 이재명 (Klavi 오픈뱅킹 핀테크 파트너, OKTA 상파울루 홍보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