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아침] 브라질에서의 첫 석유개발은 민간으로부터 1858년 바이아 (Bahia)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실질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 1930년대에 이르러 본격적인 발견들이 시작되는데, 바로 살바도르 (Salvador) 근교인 로바또 (Lobato)에서 그 빛을 보게 된다. 당시 로바또 지역의 주민들은 희한하게도 기름기가 있는 어두운 진흙들을 집에 광을 내기 위해 사용했다고 하며, 이것을 들은 마누엘 이나씨오 바스또스 (Manoel Inácio Bastos) 농업 엔지니어가 광적으로 지역을 탐색했고, 점차 구체적인 성과를 본 그는 보고서를 가지고 1932년 바르가스 대통령을 면담하게 된다.
1934년 제2공화국의 헌법을 통해 바르가스는 이미 브라질 내에서 발견되는 모든 자원은 국유화가 된다는 법적인 근거를 확보했고, 이어서 1938년에는 국가석유처 (Conselho Nacional de Petróleo – CNP)을 만들어 발굴 작업의 체계를 잡아갔다. 바스또스 엔지니어는 계속해 로바또 지역에서 발굴을 이어갔고, 그 결실은 1939년 1월 21일에 이루어져, 브라질 땅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된다.
첫 조세개혁
1930년대에 시행된 개혁은 지난번에 소개한 노동개혁도 있지만, 같은 시기에 진행된 개혁인 조세개혁을 빠뜨릴 수 없다. 당시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제국 때 만들어진 조세제도를 유지하고 있어, 주요 세 수처는 수입세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주 정부의 세금이 있었지만, 대체로 수출하는 품목에 대한 세금과 다른 주로 판매되는 각 주간의 수출세라는 게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수입세만 의존하기엔 리스크가 컸었으며 내수 시장도 어느 정도 형성이 되어 있었기에, 새로운 세금들을 도입하게 된다. 첫 번째로는 1922년에 도입된 상품 판매세가 있었고 2년 뒤에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전문가 대상 소득세를 만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1934년 새 헌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첫 조세개혁인데, 이미 당시부터 상파울루주는 경제 적과 지역적으로 가진 상징성으로 인해, 그 영향이 중앙정부 에게도 끼치게 되어 개혁의 초점은 지방 분권화의 기초를 만든 주 정부와 시청 수준에 세금 도입이 이었고, 전체 지방세는 10% 내외로 징수되도록 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공화국으로 연방제가 아니라, 지금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구조의 정부 구조가 아니라, 주 단위의 권력은 제한되어 있었다. 새 조세정책은 각 주에게 세금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지만, 징수되는 세금의 일부는 중앙정부와 나눠야 했었다. 주 같은 경우는 징수되는 세금에서 30% 그리고 20%를 징수가 집행된 도시 시청과의 세금 공유로 조세 공정성을 보장했었다.
조세개혁이 가져온 변화는 분명했다. 먼저, 수입세에 의존했던 브라질의 세수 처가 변하기 시작했다. 주 정부로서는 내수 시장 수출세가 없어지자, 거래세가 45%로 주요 세 수처로 떠올랐고, 시청들은 서비스 세와 건물 보유세를 통해 세수의 30-40%를 보장했다. 중앙 정부는 수입세가 주요 세 수처였지만, 2차 대전 시기에는 수입이 제한되어 거래세가 주요 세수 처가 되었었다.
정치는 혼란에 혼란 속
1930년 정권을 잡은 바르가스는 1934년까지 임시정부를 통해 정권을 유지했으며, 1934년에는 개헌을 통해 새 대통령으로 당선이 된다. 이때의 브라질 정치는 매우 혼란 속에 있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극심하게 양극화된 전체주의를 기반한 두 개의 정치 세력들 때문이다.
양 그룹은 민주주의나 경제 자유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들의 사상을 내세우기 바빴었다. 극우세력으로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이민을 온 유럽인들 중심으로 군복을 상징하는 초록색 옷을 입고 통합주의 사상과 리더 쁠리니오 살가도 (Plínio Salgado) 아래 뭉친 브라질 통합 행동 (AIB – Ação Integralista Brasileira)가 있었다. 이들은 사회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중산층들 중심으로 매우 과격한 단체들이었다. 극좌세력으로는 브라질 공산당 (PCB)의 지원을 받아 생긴 국가해방연합 (ANL – Aliança Nacional Libertadora)으로 군 장교 출신이자, 기득권을 극도로 혐오했던 루이스 까를로스 쁘레스떼스 (Luis Carlos Prestes)가 리더로 있었다. 쁘레스떼스는 모스크바에 몇 년 거주한 뒤에 브라질로 돌아와 공산주의 운동을 했었다.
바르가스 입장에선 이러한 사회 혼란은 자신의 중앙정권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판단을 하였다. 그 시작은 ANL가 공산주의를 위해 봉기 (Intentona Comunista)를 1935년 11월 헤시피 나따우, 히우 데 자네이루에서 군과 함께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해 일어났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이 계기로 바르가스는 국가보안법을 만들었고, 같은 해에 ANL은 강제 해산된다.
국가보안법에 이어, 바르가스는 국가 비상상태 선언으로 그의 권력을 더 넓혀갔다. 물론, 이때 ANL은 완전 해산됨과 동시에 공산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생긴 국가보안재판소 (Tribunal de Segurança Nacional)을 통해 형벌을 받았지만, AIB도 정부로부터 불법이라고 판정을 받아, 순순히 해산되었다.
(3부에서 계속 됩니다)
저자: 이재명 (Klavi 오픈뱅킹 핀테크 파트너, OKTA 상파울루 홍보 위원장)